운영자의학력과 경력

성균관대학교경제과졸(B.A), 고려대학교대학원,
동아대학교교육대학원(Ed.M),
Faith Theological Saminary(D.Min),
대전대학교대학원행정학박사(Ph.D)
한민대학교총장역임, 한성목회대학원장
한민대학교신학과교수, 한국신학원교수,
대전대학교강사, 한국기독교문인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회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크리스챤문학詩부분등단, 문학사랑詩부분당선,
문학사랑 35회인터넷문학상수상,
詩集(카이로스의 만남에서),
국제크리스챤작가협회중부지회장, 계간크리스챤문학운영이사
대전펜클럽운영위원, 한국문인협회대전지회원,
(사)문학사랑문인협회회원,



신앙시를 쓰는 장성우 시인은



주님과의 아름다운 소통으로
맑은 고백의 언어들이 음미할수록 따스한 느낌을 받습니다 

시속에서 아름다운 섬김과 나눔을 끌어안은  
주의 성품을 닮았기에 시가 주는 맛이 더욱 은혜롭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과 형제와 이웃을 위한 사명이 
시속에서 차오르고 있기에 신앙으로 엮은 시는
 
가까이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더 깊게 빠지는 기쁨과 함께 
성도들에게 큰 소망과 위로를 얻는 귀한 시인이십니다

-김철수 시인-

 
 
  


    슬픈 눈을 가진 메시아messiah
      詩. 새빛 장성우




    
    
    
    
    하늘이 고와서 좋은 자리지만
    
    버려진 땅에 사랑을 찾아
    
    황야를 헤매는 슬픈 눈을 가진 메시아messiah
    
    
    
    배신과 증오 가득한 이곳에
    
    사랑을 심기 위한 발걸음으로
    
    끝없는 가시밭길 외로이 가는
    
    눈이 슬퍼 외로운 이여,
    
    
    
    산을 보고도 외롭고
    
    강을 보고도 외로운 눈을 가진 당신
    
    구원에 대한 사명이 있기에
    
    하늘을 보고 기도하는 슬픈 눈를 가진 메시아
    
    
    
    당신은 신의 아들이기에
    
    더욱 그 눈물 맺힌 눈물방울이 슬픔이기에
    
    가련한 인간의 생노병사(生老病死)와 함께
    
    끝없는 길을 가는 슬픈 눈을 가진이여
    
    
    
    오늘도 나는
    
    당신의 눈을 보고 걷고 있다
    
    버려진 땅에서 당신이 걷던 그 길을
    
    당신이 바라보는 눈을 닮아
    
    슬픈 눈에 미소를 띠며 묵묵히 가고 있다.
    
    
    
    영상의 시 (나무에 오는 눈) / 새빛 시찬미영상
    
    
    

내가 만난 한하운(韓何雲: 1919.3,30-1975.2,28)시인

'문둥이 시인'으로 불리던 
한하운이 처음으로 시를 쓰고, 그것이 발표된 것은 
1949년 3월 (신천지)에서다. 초기작으로 알려진 '전라도 길'이다
보릿고개 세상을 떠돌며 당시 사람들의 심금(心琴)을 울린 
한하운(韓何雲: 1919.3-1975.2)의 시(詩), 

황톳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西山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속으로 쩔룸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긴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千里 먼 全羅道길 

한 가닥 인골(人骨)의 피리에 맺혀 
우는 호원의 천한 울음으로 흐흐흐 흐느낀다. 
죄명(罪名)은 문둥이 어처구니없는 벌이다. 
법문(法文)에도 없는 어느 조항에도 없는 변호할 길도 없다. 

시를 읊다 보면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푸념의 사연으로 대변하고 
억울하게 애원했던 것이다. 
양심적인 삶의 의미를 갖게 한 한하운은 
한국 시단(詩壇)에 독보적인 나병 시인이었다. 
그의 시는 어렵던 그 시절에 신변의 애화(哀話)를 시의 형식을 통해 읊은 것이다. 
나병(癩病)의 선고를 받던 날 그 순간부터 하늘이 무너지는 주검보다도 
무서운 절망에 허탈해 버렸다. 이 마을 저 마을로 어린아이들 놀림의 돌팔매 맞으며 
보리피리 불며 황량한 황톳길을 떠나갔다. 

보리피리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ㅡ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ㅡ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ㅡ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ㅡ ㄹ 닐니리

절망의 수십 년 세월 속에 
세상 사람들이 제멋대로 규정한 인간 추방의 잔학성에 
인간 폐업(廢業) 서식 조건을 박탈당한 산송장으로 싸워나온 그였다. 
눈물의 언덕을 넘어 숨이 턱에까지 차는 호흡의 리듬 멈춰 질 듯한 
절박한 가냘픈 애절한 울음으로 흐느꼈다.

“원한의 하늘을 찢고 우는 노고지리도 
험살이 돋힌 쑥대밭이 제고향인데 
인목(人木)도 등 넘어 알아보는 제고향 인정(人情)이래도 
나는 산넘어 봐도 
고향도 인정도 아니더라” 
이제부터 준령(峻嶺)을 넘으면 고향 없는 마을을 볼지 
마을 없는 인정을 볼지 
어느 누가 고향이 그립지 않을 수 있을까 마는 
산넘어 바라보는 
그의 그런 범속한 그리움과 응고된 본능은 사라져버린 
공허와 시련의 세월만 무정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외로운 고독과 
자학(自虐)의 저주로 이어져 울음소리 구천(九天)에 처절한 
생명의 눈물을 뿌리며 메마른 황톳길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과 문학인의 십자가를 대신 걸머지듯 그에겐 소금이요 
불 밝혀 길 인도하는 빛이 되었다. 
그가 남기고 간 주옥같은 시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지금도 언뜻 마른 먼지 쓸고 간 
그 길을 가고 있을 한하운. 
얼마만큼 멀어져 가고 있을까. 
유명(遺命)을 달리한 비운의 시인 한하운. 
저세상에도 황토 보리길이 있지나 않은지 
그곳까지 황토 보리길이 있으면 어쩌나 하고 염려스러움은 웬일일까

많은 시인 중에 한하운이 
오랫동안 우리 시단의 일원으로서 독자들의 선망과 
존경을 한몸에 받아왔음은 무엇 때문인가. 
만약 그가 나병의 병고에서 오는 저주와 비통함을 시로써 읊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는 다른 각도에서 그를 지켜 보았을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가 《한하운시초》(제1시집.1949.정음사)를 간행하여 
일약 나병시인으로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음은 틀림없다.

한하운 시인을 알게 된 것은 
청량리에서 흥국소년직업학교를 할 때였다
4.19 혁명이 나고 대학생들이 모여서 
어려운 청소년을 위하여 학교를 세웠다
그때 어느 날 동아일보에 난 기사를 보고 격려차 찾아왔다

천형의 시인 한하운. 그는 나병이 완치된 후였다
처음 그를 만나는 순간 감동하며 얼굴을 쳐다봤다. 
얼굴은 조금 일그러지기는 했으나 볼썽 사나운 모습은 아니었다
한하운이 정말 보리피리를 불며 
눈물의 언덕을 지나 방황하는 모습이 생각났다
한참 나이 어린 대학생이던 나를 대하는 반가워하는 한하운, 
그는 시인 정서와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바로 정을 느꼈다.

그리고 시인의 위대성이 젊은 나에게 각인되었다. 
그 당시는 무조건 그의 시가 좋았다
짧은 만남이지만 그의 인간성을 만나게 된 후에 
나에게 시를 쓰게 된 동기가 부여된 
현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후에 시를 쓰면서 
그이의 처철한 삶을 각인 받아 작품 활동을 
계속하게 되었다.
《한하운시초》에 이어 제2시집 《보리피리》를 내고부터 
한하운의 주위에는 날로 그를 찾는 펜들과 
격려 편지가 쉴 새 없이 답지한다. 
이럴 때마다 그는 군중 속의 인간 고독을 더 뼈저리게 느껴 
천형의 문둥이임에 몸부림치며 애환의 거리를 울며 떠돌고 싶다는 것이다.

파랑새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우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이 시는 《한하운시초》의 「파랑새」이다. 
몇 귀절 안되는 이 시에서는 땅을 치며 
호소하는 인간 생리 본연의 저주가 들린다. 
차라리 자유로운 새의 푸른 노래가 자신이 원하는 숙명이었을는지 모른다.

한하운은 
그 후 직업소년학교 학생들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자상한 상담자였다
다재다능한 그가 문둥이란 죄명으로 
문단의 외면을 받아왔음은 억울한 노릇이다. 
그는 참으로 많은 일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한 세상 한 세월 살면서 태어난 보람을 꿈이라 하오리>하고 
살아 생전에 말할 수 있었던 한하운, 1957년 자신의 나병도 완치하고 
나환자 구제 운동에 헌신하던 중 
2월 28일 시병(侍病)인 간장염으로 작고하였다.

2. 한하운시인의 주요 작품 

생명의 노래/한강수/보리피리/ 리라꽃 던지고/ 여인/ 
자화상/명동거리 1.2.3./전라도 길/추석달/ 고향/추억1.2/ 
추우일기/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소록도 가는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길 전라도 길



제일 먼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좁은 지역에도 한 포기의 꽃을 피웠더냐

하늘이 부끄러워
민들레꽃 이른봄이 부끄러워

새로 돋을 수 없는 빨간 모가지
땅속에서 움돋듯이 치미는 모가지가 부끄러워

버들가지 철철 늘어진 초록빛 계절 앞에서
겨웁도록 울다 가는 청춘이요 눈물이요

그래도 살고 싶은 것은 
한번밖에 없는 자살을 아끼는 것이요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정말로 아니 올시다 

사람이 아니 올시다 
짐승이 아니 올시다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잘옷 돋아난 
버섯이올시다 버섯이올시다 

다만 버섯처럼 어쩔 수 없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목숨이올시다 

億劫을 두고 나눠도 나눠도 
그래도 많이 남을 罰이올시다 罰이올시다. 

영상의 시 (란, 아침 이슬에 꽃피다) / 새빛 시찬미영상

한하운 시인의 영향은 후에, 나를 신앙시를 쓰는 시인을 만들다

오랜 가슴 속의 꿈을 크리스챤문학 詩부분 등단으로 시작하여, 
문학사랑 詩부분당선하고,  문학사랑 35회 인터넷문학상을 수상하다. 
그래서 한국문인협회회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으로 활동하며 
<카이로스의 만남에서>란 詩集을 발간하여  신앙시집으로 시작하여
국제크리스챤작가협회중부지회장으로 수고하며, 
계간크리스챤문학운영이사 
그리고 대전지역 문인으로 활동하여 
대전펜클럽운영위원, 한국문인협회대전지회원, 
(사)문학사랑문인협회회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장성우박사 가족 소개☆

장성우박사는 충북태생이다. 
청주고둥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경제학사(B.A)를 받은 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후, 
서울기독대학교 신학과에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1983년부터 한민대학교신학과 전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실천신학을 가르쳤다.

장성우박사는 
학문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M.Ed)와 대전대학교 대학원에서 
"체제이론적 접근에 의한 한국교회의 분석" 이란 논문으로 행정학 박사(Ph.D)를 
취득하였으며, 미국 Faith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D.Min) 학위를 
취득하였다.

영상의 시 (푸르고 깊은 바다) / 새빛 시찬미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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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옥사모는 
숭의여고 졸업하고, 서울기독대학교 신학과를 1회로 졸업했는데, 
오빠 김종기 목사(만목교회), 김종부 장로(영동교회)와 
동생 김정인 목사(미국 산타모니카교회), 
김종현 목사(강남제일교회)의 5남매 중 외동딸이다. 

장성우목사는 
전남 해남 동리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여 1978년 10월에는 
서울 강남구 신월동에 강남 제일교회를 세우고, 대전에서 사랑교회, 
중부교회를 창립했다. 

그리스도의교회총회서기, 
총무, 이사, 부총회장, 총회장 등 여러 직책을 맡았고, 
활발한 매스컴 활동을 통하여 시, 수필, 논문 등 다수를 발표했다.
12개 교단 대표로 구성된 사단법인 한국 기독교 교역자 협의회 서기와 
실행위원으로 활동을 했다. 
2009년 11월 20일(금) 오전11시에 유성리베라호텔에서 그리스도의교회총회장
이,취임식예배를 드리고, 총회장에 취임하여, 2010년 10월 14일까지
임기를 마치고 그리스도의교회를 위한 사명을 성실히 했다

 
 
  
 
  
 
  
 
  
 
 
저서로는 '환원교리와 역사'가 있고, 
'21세기 교회개혁의 이상', 
'왜 나는 그리스도의 교회 교인인가' 를 번역하였고, 
'일곱 촛대의 비밀', 
'고독한 승리'의 설교집이 있으며, 다수의 논문이 있다.

또 미국, 호주, 필리핀, 중국 등지의 교회들과 긴밀한 협조를 이루면서, 
신학자, 목회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선교에 성과를 거두었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으며, 
장녀 장지은교수는 이대신학대학원을 거쳐, 
백석대학교대학원에서 선교학 박사(Ph.D)를 취득하고, 
아시아연합신학대학교와 
그리스도신학대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아들 장혁목사는 그리스도신대와 
한신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29세에 목사안수를 받고, 
현재 박금안사모와 아들 
장하준과 딸, 장희서와 함께 주님의은혜와사랑교회를 섬기고 있다